동네탐험일지 - 정릉천 벚꽃 산책
- 일상탐험
- 2020. 4. 11.
요즘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 주변을 재발견하고 있다.
2년 반 정도 타지에 나가 살다가 서울로 다시 돌아온 탓도 있고, 다시 프리랜서를 하면서 재택근무를 하게 된 탓도 있고, 서울 집에 오래 있다 보니 타지로 나가기 전 10년 정도 살던 곳인데도 봄 풍경이 이렇게 예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만 있기에는 답답한 마음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정릉천에 자주 가게 되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나무, 새로운 꽃,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제 보지 못했던 풍경이 오늘 가면 새삼 눈에 들어오고 혼자 갔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도 동행인이 발견해서 알려주는 재미.
경국사 주변을 지나가는데 멋진 풍경을 발견했다. 전에도 분명히 봄에 산책을 왔을 텐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아무래도 요즘은 사무실에 매일 출퇴근하지 않고 내 시간은 내가 계획해서 쓰다 보니 마음과 시선에도 여유가 생기는 모양이다.
동네 벚꽃길은 여의도 윤중로만큼의 스케일은 아니지만, 이 곳이 주는 봄이라는 계절에 대한 설렘은 어느 유명한 벚꽃길 못지않다. 봄바람에 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또 그 바람을 느끼고 서있자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몽글몽글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마스크를 끼고 산책을 나온 동네 주민들도 비슷한 감상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친근감이 들었다.
정릉천 산책로 초입에는 이렇게 귀여운 정릉텃밭도 있다. 여러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텃밭을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다리 밑에 있어서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었는데 내 시선을 끌어준 작은 꽃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아파트 입구에는 연보라색 라일락이 하나하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 또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쳤을법한 풍경, 어쩌면 몇 년 전 출근길에는 걸음을 재촉하다 놓치고 지나갔을 풍경이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집에 있는 시간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에게는 봄을 만끽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일에 치여서, 또 개인적인 일들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하루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일기장을 들추어 보지 않으면 무엇을 했는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
봄은 매년 나를 찾아왔는데 나는 봄을 반갑게 맞아준 적이 없었나 보다. 학교 다닐 때는 새 학기에 대한 불안감과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함이 싫어서 봄은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었다. 올해는 봄꽃과 봄 풍경이 얼마나 예쁘게 느껴지는지 봄이 참 좋아진다.
침대 곁에 두고 읽는 책이 이런 구절이 나온다.
"We are shaped by our shaping of the world and are shaped again in turn."
한국말로 직역하면,
"내가 세상을 구성하는 방식대로 내가 구성되고, 내가 구성한 세상이 다시 나를 만든다." 정도가 될 것이고,
세간에 잘 알려진 시구인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와 맥락이 통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봄에는 계절이 나에게 지어주는 미소에 나도 미소로 화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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